글쓴이

정지웅 (코리아통합연구원장, 아세아연합신학대교수)

본문

하노이에서의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영변 핵시설의 영구폐기를 넘어서는 비핵화 조치(영변+ α)를 요구했고, 김 위원장 또한 남북협력사업에 대한 제재 면제 수준을 넘어서는 유엔안보리의 제재 완화를 요구해 결국 양측이 입장 차이를 좁히는데 실패했다. ‘협상의 달인’을 자처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른바 “No Deal이 Bad Deal보다 낫다”는 협상원칙에 따라 ‘노딜’을 선택했다. 과거 김정은과 햄버거 대화를 하겠다고도 말했지만 제한적 대북 예방타격을 뜻하는 ‘코피(Bloody Nose) 전략’을 공공연하게 거론하였던 트럼프의 대북정책 옵션은 아주 다양했다.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불투명하기도 했다. 과거 대통령과 다른, 그의 개인적 성격, 비즈니스맨 출신이라는 것이 관성에 얽매이지 않고 북미정상회담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일리가 있었다. 이번 회담은 그가 냉정한 비즈니스 맨 출신이라는 것을 다시 환기시켜 준다고 하겠다.

북미정상회담 종결 후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저는 더 많은 걸 요구했고 김 위원장은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합의 결렬의 원인과 관련해 “제재가 쟁점이었다.”며 “북한이 제재완화를 원했지만 우리가 원했던 것을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동석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영변 핵시설 외에도 굉장히 규모가 큰 핵시설이 있다. 미사일도 빠져 있고, 핵탄두 무기 체계가 빠져 있어서 우리가 합의를 못했다. 핵목록 작성과 신고, 이런 것들을 합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회담 결렬 직후, 미국은 ‘영변 핵시설 폐기 +α의 비핵화 조치’에까지 합의하기를 원했던 것으로 판단되었다. 미국의 이 같은 입장은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3월 1일 새벽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회담 과정에 미국 측은 영변지구 핵시설폐기 조치 외에 한 가지를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다”고 밝힌 것을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추후 회담장에 북측의 카운터 파트너 없이 참석하였던 볼튼이 폭스뉴스와 진행한 인터뷰에 의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빅딜, 즉 비핵화를 계속 요구했다. 핵과 생화학 무기, 탄도미사일을 포기하는 결정을 하라고 했다”고 하면서 그 대가로 북한의 거대한 경제 미래상을 제시했다고 한다. 핵과 미사일 외에 생화학무기까지 포함하는 이른바 대량살상무기(WMD)의 완전한 폐기까지 미국은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까지 미국이 나올지 북한은 예상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북한이 선뜻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가방에는 ‘빅딜’과 ‘스몰딜’, ‘노딜’ 카드까지 모두 들어 있었다고 보여진다. 또한 미국조야에서 회담 전부터 우려해 왔던 소위 북한이 주장하는 이른바 단계적 해법인 ‘스몰딜’ 카드가 성사되어 귀국할 경우 비판에 직면할 것임도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이는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스몰딜’을 하지 않았다고 강조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한편 리용호 외무상은 새벽의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유엔 제재의 일부, 즉, 민수 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하면 영변 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 공동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는 것이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고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2017년 채택된 5건, 그 중에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북한입장에서는 영변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우선 급한 부문의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수준으로 이번 회담의 성과를 찾으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들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중심이 되었던 앞선 실무회담 수준에서 논의되었을 것이다. 즉 북이 수용할 수 있는 평화체제와 비핵화의 부분적 동시이행을 주고받기하는 수준의 단계별 합의를 모색했을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미국입장에서 보면 일괄타결인 ‘빅딜’이 아닌 단계별 해법인 ‘스몰딜’인데 미국의 국내정치 상황이 트럼프가 이를 허용하지 못하도록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스캔들, 트럼프 가족의 세금문제, 트럼프 대통령의 ‘해결사’에서 등을 돌린 옛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의 하원 청문회가 정상회담 시간에 열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국내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는 것이 절실했을 것이다.

트럼프는 만약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포함하는 일괄타결 즉 ‘빅딜’을 받아들인다면 자신은 엄청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의기양양하게 귀국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을 것이고 북한의 표현에 의하면 이를 집요하게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북한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영변핵시설 폐기 이외의 추가 비핵화 조치에 대해서까지, 그리고 생화학무기에 대한 폐기까지 합의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미국도 북한이 ‘빅딜’을 받을 준비가 안 되었다고 보았고, 이 경우 미국팀은 판을 접는다는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나왔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에서는 강경파로 알려진 볼튼 때문이라는 말이 많았지만 그는 협상전략으로 적절한 악역을 맡았을 뿐이다.

협상을 결렬시킴으로 트럼프는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비난도 피했다. 워싱턴의 컨센서스는 “나쁜 딜보다는 노딜이 낫다”로 모이고 있다. 헤리티지 파운데이션의 올리비아 에노스는 BBC에 ‘배드딜(나쁜 합의)’보다는 ‘노딜’이 낫다며, “지킬 수 없는 조건들이 담긴 합의는 서명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덧붙였다.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과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 역시 이 같은 평가에는 동의하고 있다. 미국의 국익을 손상할 수 있는 거래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올바른 판단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제재 완화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것은 유엔안보리에 의해 채택되었던 대북 제재 중 북한이 요구한 일부 해제 즉 민수경제와 인민생활과 관련이 있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더라도 대북 제재에 구멍이 생겨 북한에 대한 압박이 현저하게 무력화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비핵화 협상 동력이 약화되어 모처럼 찾아온 북핵 비핵화 기회를 놓칠 것을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미국 조야의 컨센서스이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보수적 시각을 가진 분들의 입장이기도 하다.

회담이 결렬되기는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매우 생산적인 시간을 같이 보냈다. 김 위원장, 북한과 계속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도 회담 결렬의 이유를 기자들에게 설명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나 미국에 대한 신랄한 비난은 자제하는 매우 절제된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모습들이 협상의 결렬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주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런데 북한의 최근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복구 움직임은 많은 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NYT는 “이는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이 중대한 외교적 치적으로 주장해온 미사일 실험의 유예를 끝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첫 번째 신호일 수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비핵화 협상에 대한 북한의 태도에 있어 불길한 징후(ominous sign)”라고 표현했다. WP는 위성 사진 상 복구 작업 시작 시기가 회담 결렬 직전 또는 바로 그 직후라는 점을 강조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이 핵·미사일 실험을 재개하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언급한 맥락에서 본다면 발사장 복구 조치는 ‘도발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안보 전문 싱크탱크인 스팀슨 센터의 제니 타운 연구원은 WP에 “동창리 발사장 폐기는 북한이 협상 절차를 시작하면서 신뢰구축 조치의 일환으로 시행한 독자적 조치 중 하나라는 점에서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반면 CNN방송은 “위성사진이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주긴 하지만 분석가들과 전문가들은 보완할 충분한 정보 없이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지는 말라고 경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CNN에 “북한이 우리(미국)가 알기를 원하는 무언가를 한다면 그에 관해 이야기할 텐데, 그들은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았다”며 아직 판단은 이르다고 강조했다. 비확산 연구소의 수석연구원 데이브 슈머러는 CNN에 “이번 활동이 워싱턴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기 위한 협상 전략 차원에서 이뤄진 ‘한 수’일 수 있다”면서 “이 시험장은 매우 ‘투명’하다”며 북한이 미국의 ‘인지’를 염두에 두고 던진 카드일 수 있다는 분석했다. 더불어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를 운영하는 조엘 위트 스팀슨 센터 수석연구원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북한의 시설 복구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위한 준비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지적했다. 회담 결렬 이후 대화 재개 입장을 밝혀온 트럼프 행정부는 선(先)확인-후(後)조치 기조를 유지하는 분위기이다.

동창리 발사장 복구 움직임으로 북한의 비핵화 회의론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하자 북한 매체들은 2019년 3월 12일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일제히 밝히고 나섰다. 북한은 대남선전매체를 통해 “북미간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고 완전한 비핵화로 나가려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하노이 회담에 대한 평가에서도 ‘결렬’이라는 표현 대신 “앞으로도 긴밀히 연계하며 회담에서 논의된 생산적인 대화들을 이어나가기로 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또다른 선전매체도 같은 내용의 글과 양 정상의 서명이 들어간 싱가포르 합의서 사진을 실었다.회담 결렬 이후 내부 평가를 마무리하면서 최근 동창리 등과 관련해 커지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협상 지속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앞으로 북미 간에 어떤 접점을 찾을지 주목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회담 결렬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해 달라고 요청한 대로 우리 정부는 북한에 특사를 파견해서 북한의 입장을 명확히 듣고 중재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또한 남·북·미 실무협의 개최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양국이 원하는 것이 뚜렷해졌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더라도 기타 지역의 핵시설이 여전히 존재한 상태에서 제재를 해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여야가 이에 대해 일치단결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핵시설과 기존의 핵무기를 폐기하고, 애써 개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그리고 핵이 아닌 생화학무기까지, 정말로 폐기하려고 마음을 먹으려면 미국의 완전한 체제보장과 미국과의 완전한 신뢰회복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영변 + α를 두고 북미간 치열한 기싸움과 협상시의 난항이 있을 것이다. 이를 충분히 예상하고 포괄적 합의를 이끌어 내서 전체 프로그램에 대한 폐기를 일괄적으로 약속하고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방식으로 접합점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 정부는 노력해야 할 것이다.

Leave a Reply